東茶頌 / 동차송
<감심자소甘心子疏>
*동차송은 사문沙門인 초의艸衣 장의순(張意恂/1786~1866)이 송頌을 지은 헌종3년(1837) 당시까지의 차고전을 망라 참작하며 차예茶藝를 닦아온 기반위에 바다동쪽 우리차의 우수성을 알리고 아름다운 차풍속을 부흥復興 시키고자 스스로 주註를 겸해 기려 읊은 것으로 흔치 않은 우리 차서茶書의 고전이 되어 이로 동차를 이해해 나가는데 첩경이 될뿐 아니라 아울러 차서의 정화精華를 겸했다 기릴 송頌은 원래 꾸밀 용容의 뜻으로 풍風 아雅와 함께 시경詩經을 이루는 한 형식으로 나와 있다.
*茶의 우리 음은 차와 다가 있는데 지금 속음으로 통행하는 음인 "차"의 구개음화가 이루어 지지 않은 우리 음은 "타"로서 원음이나 옛 음은 다에 가까왔던 것으로 보이고 원래부터 음의 계통을 달리해 들어왔던 것은 아닌듯 한데 광의廣義의 차는 차로 하고 본래 차는 다로 한다는 관례가 생기거나 어느 경우에 차로 부르고 어느 경우는 다로 쓴다는 규칙없이 다만 종래 문언에 따라 다의 음을 쫓는 경우에는 차의 의미에 새삼스레 좀 더 정아正雅한 멋을 추구하고 이미지를 달리하려는 경우로 비춰지는듯한 것이 일부 있어 온듯했다 그러나 개화이후 다방 또는 다실이라 하면 지금 잘 알다시피 단지 시중의 커피판매를 위주하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서 속화되었을 뿐이며 오히려 근래 다시 명차茗茶를 위주하는 곳은 이른바 전통찻집의 찻집으로 서로 구별해 부르게끔 되었음을 볼때 결국 내용이 문제지 단지 색깔과 명칭만 달리해 스스로 구별한다고 그만으로서는 잠시 기분만 내는데서 별로 벗어나지 못함을 보이며 이상으로 아직 우리 차풍속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듯한 만큼이나 그때그때 되는대로 부르고 뒤죽박죽 조리가 서지 않은듯해 어디서 차로 하고 어디서 다로 하기도 곤란하니 종래 불러오던 대로 통행음에 따라 차의 음으로 되도록 획일해 나가면서 다의 음을 겸하기로 한다.
東茶頌 承海道人命作.
동차송은 해도인의 명을 받들어 지음.
<감소甘疏>
*해도인은 정조의 부마 홍현주(1793-1865)로서 호는 해거재海居齋이고 도인은 도교수도자인 도자道者와 구별해 불교수도인을 이르는 말, 초의가 글을 지어 해거재에게 드리던 처음에는 옛 악부의 한 형식인 행行의 이름을 취해 동차행 이라 했다 해도인의 명이란 것은 다름 아니라 마치 당 노동이 맹간의 가 보내준 차를 받고 "지존의 나머지가 왕공에 합당한데 무슨일로 산인의 집에 이르렀나" 라면서 시를 읊어 말했던 것 처럼 당시 동차의 부흥조復興祖인 차산 정약용이 졸하자 진도부사 변지화를 통해 초의에게 차를 묻는 구실로 드디어 초의가 차산을 계승해 나서 차의 일인자로 나서게끔 한마디 할 계기를 주려한 것으로서 물론 초의는 이미 차의 대가로서 평소의 유여한 역량이 바탕되지 않고서는 될일이 아니지만 역시 말이 나기 전에 나름대로 다소 준비되어 온 바가 있을 것이다.
(海居道人 垂詰製茶之후 遂謹述東茶頌一篇以對)
해거도인이 차 제조하는 상황에 대한 캐 물음을 내리시기에 드디어 삼가 동차송 한편을 서술해 이로 대함.
<감소>
*후는 候의 人 없는 자, 여기서는 또한 후候의 뜻 임.
예기 악기편에 짓는 것을 일러 성聖이라 하고 술하는 것을 일러 명明이라 한다 했는데 동차송은 아래로 읽어보면 알겠지만 내용상 창작보다 찬술위주로 종래로 여러 고전의 꽃을 따서 동차에 맞게 구슬을 꿰어 아름답게 엮으려 한 것을 알수있다 공자는 말하길 모르면서 짓는자 대개 있으나 나는 이것이 없다하고 또 스스로 말해 서술하고 짓지는 않는다 했으니 모르고 말하니 오히려 무에서 유가 생겨 절로 허구적 창작이 될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는 동차송을 짓는다하고 여기서는 술한다 함은 어째서인가 내용상은 찬술의 성질이라도 동차송의 등장 만큼은 하나의 시작이 아닐까 가히 술述로 작作을 이뤘으며 작이면서 술로 겸퇴謙退한 것이라 하겠다.
艸衣沙門意恂 / 초의사문 의순.
<소>
장의순은 자가 중부中孚 호는 초의艸衣로서 15세에 남평南平 운흥사雲興寺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으며 정약용에게 학문을 배우고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등의 명사와 친교가 깊었으며 후에 해남의 두륜산頭輪山 일지암一枝庵에서 수도하며 서울 봉은사奉恩寺에서 화엄경을 새길 때 증사證師가 되었으며 그의 문집이 전한다 사문沙門은 좋은일을 행하고 나쁜일을 행하지 않는다는 뜻의 범어에서 비롯한 말로 출가한 중을 달리 일컫는 말이라한다.
后皇嘉樹配橘德 / 후황后皇이 나무를 가상嘉尙히 해서 귤의 덕에 짝하니
受命不遷生南國 / 명을 받음이 옮기지 않아 남국에 살며
密葉鬪霰貫冬靑 / 빽빽한 잎은 싸락눈과 싸우며 겨우내 관철해 푸르고
素花濯霜發秋榮 / 흰꽃은 서리에 씻으며 가을영화를 낸다
姑射仙子粉肌潔 / 막고야산의 선인의 분같은 살결로 깨끗하고
閻浮檀金芳心結 / 염부단금의 금꽃술 맺혔으며
<소>
*초사의 귤송의 첫머리에 후황가수后皇嘉樹 귤래복혜橘徠服兮 수명불천受命不遷 생남국혜生南國兮등의 말로 시작하니 그 뜻은, 후토가 나무를 가상히 대하니 귤이 와서 복속한다 명을 받음을 옮기지 않아 남국에 산다...,
후황은 곧 후주后主로서 여기서는 조물주로서의 천제인 하늘의 뜻과 상대적으로 양생주로서의 땅인 후토를 말한다 주역 곤괘 단사에,
"지극하구나 곤坤의 원元함이여 만물이 자생資生하고 이에 순히 하늘을 잇는다 곤이 두텁게 물건을 실으니 덕이 무강함에 배합한다." 하였으니 후토가 능히 만물을 싣고 천명을 받들어 길러내는 것이다 후后는 글자의 유래가 한사람이 입으로 명령을 내고 있는 모습을 취한 것이라는데 역시 주역 천풍구天風女+后 괘의 대상에 하늘 아래 바람이 있는 것이 구니 후后는 이에 명을 베풀고 사방에 내려 고 한다. 했다 그래서 천자의 뒤를 따르는 어머니를 후라 한 것인데 후后가 후後의 뜻이기도 한 것은 여기서 나온 것이 되겠으며 단지 황후라 하면 왕의 후이며 양생주로서의 제왕의 명칭이 아니므로 후황이라 한 것이다.
*주역 문언전에 형亨이란 것은 가嘉의 회會다.하고 또 가회嘉會로 족히 예에 합당한다.는 구절이 있으니 원元이 봄 리利가 가을 정貞이 겨울로서 형은 여름의 덕을 나타내는 말이니 가嘉는 가佳의 뜻과 통하고 갑남을녀 각자 크는대로 크서 누구랑 살아도 이래 못살까 하거나 어디 심은들 귤이고 탱자로서 별반 다를 것도 없다면 굳이 가회라 말하기 부족할 것이다 또한 무슨짓을 하는지 별스럽게 쉬쉬 몰래 만나고 심는다면 합례할수 있을까 초사의 귤송에 가수嘉樹라 하고 육우의 차경에도 차는 남방의 가목嘉木이라한 것은 특히 맞는 조건이 따로 있어 이로 아름다움을 이룰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명의 왕상진의 차보소서에,
"차는 가목이다 한번 심으면 다시 옮기지 않는다 그래서 혼례에 차를 쓰는 것은 하나를 쫓는 뜻이다."
했는데 이는 얼풋 설명되고 정확치 못한듯하다 나무는 원래 스스로 옮기며 사는 물건이 아닌데 비록 북돋아진 버들이라도 그 장소가 아니면 어쩔수 없을 것이고 그 꺽어 내 던져져도 가회함을 얻을것 같으면 그대로 잘 살 것인데 무었때문에 옮길 것인가 먼저 가회임을 의미하고 옮길것 없음을 기원하는 뜻이지 단지 옮기지 못하기에 가목이라 말 될수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전국말엽 사람으로 앞의 귤송을 지은 남쪽 초나라의 삼려대부 굴원이 지은 것으로 전하는 초사楚辭의 어부사에서 어부가 굴원에게, 창랑의 물 맑을사 가히 내 갓끈을 빨으리 창랑의 물 흐릴사 가히 내 발을 씻으리. 라고 노래했다는 것이나 굴원이 끝내 단오날 멱라수에 투신한 일을 두고 한나라 초기의 가의가 폄적되어온 자신의 처지와 비겨 슬퍼해 지은 조굴원부弔屈原賦에,
"분분히 왔다갔다 하며 그 이러한 우환에 걸리심이여
또한 부자夫子의 탓이로다
구주를 이력하며 그 임금을 가려 볼 것이지 하필 이 도읍만 회포하나
봉황이 천길 나래쳐 올라 덕의 휘광을 보아 내리는 걸"
이라해서 같은 한나라 사마천에게 처세관을 의심받기 까지 한 것 등은 모두 굴원이 초나라와 동성同姓으로 사생흥망을 자신의 일로서 같이하는 경우임을 모른 것이다 명의 전예형은 자천소품의 의차宜茶에서,
"차는 가인佳人 같다는 논의는 비록 묘하나 다만 산림사이에는 마땅치 않은 듯하다 옛날 소식의 시에 종래로 가명佳茗은 가인 비슷하다하고 증기의 시에, 사람을 옮기는 우물尤物을 무리들이 떠벌려 말한다.한것이 이것이다 만약 산림에 어울리게 한다면 당연히 모녀毛女(*한 유향의 열선전에, 모녀는 자가 왕강王姜 인데 궁녀로 진이 망하고 유랑하다가 도사 곡춘을 만나 솔잎을 먹고 추위를 견디는 것을 배워 화산에 숨어 살며 몸에 털이나 모녀라 부르는데 세세로 엽사獵師가 본다 하며 그가 머문 바위 속에는 늘 거문고 타는소리가 난다 한다)나 마고선녀 같음이라야 자연의 선풍도골로 연하에 물들지 않음이 가능하고 반드시 복숭아볼에 버들허리 같아야 한다면 극히 가리개한 금박휘장 안이 마땅하고 나의 샘과 돌을 속되게 말라"
소식이야 도회 권귀적 문풍으로 유명한 사람으로 가명佳茗은 가인佳人 비슷하다는 것도 차보다는 술에 더 친했을 제 방식으로 차를 비유해 말한 것이니 소식의 "조보가 학원의 시배試焙한 새차 보내준 시운을 따서"라는 시의 전문을 보면,
仙山靈草濕行雲 / 신선산 영초가 다니는 구름에 젖어
洗遍香肌粉末均 / 두루 씻어 향나는 살결 분말을 고룬다
明月來投玉川子 / 명월(*말차기포)이 와서 옥천자(*물)에게 투합하니
淸風吹破武林春 / 맑은 바람 불어 무림산의 봄을 깬다
要知氷雪心腸好 / 모름지기 빙설같은게 마음에 좋은 것을 알겠고
不是膏油首面新 / 기름발라 면목을 새롭게 함이 아니네
戱作小詩君勿笑 / 장난 삼아 작은 시를 지으니 군은 웃지 마시길
從來佳茗似佳人 / 종래로 가명은 가인 비슷했느니.
라고 한 것인데 묘사가 대체 이러하고 당시 송의 만연한 음차풍속에 따라 그가 남긴 많은 글중에 차에 대한 언급도 더러 있지만 의외로 그는 박주도 차탕보다 낫다 라고 말한 것 처럼 차가 암중에 사람을 손해한다하여 차를 그리 깊이 애음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논차論茶라는 글을 보면,
"번거를 제除하고 기름기(*月+貳)를 거去하니 세상에는 실로 차가 없을수 없다 그러나 암암리 사람을 손해하는 것이 적지 않다 예전에 이르기를 차마시기가 성한 뒤로 사람들은 흔히 기氣를 우환하고 황병黃病을 우환하지 않게 되었다 하니 비록 손익이 서로 반이나 양을 소消하고 음을 도움이 손損을 보상하지 못한다 내게 한 법이 있어 당연히 스스로 닦아 나간다 매 식사를 마치면 번번히 짙은차로 양치하니 번거와 기름기가 이미 제거되고 비위는 상관하지 않는다 고기의 잇사이에 있는 것은 차를 얻어 양치해 적시면 빠져나간 줄도 모르니 번거롭게 쑤실것없고 이빨의 성질도 괴롭던 것이 이로 말미암아 점차 긴밀해지고 벌레먹는 병은 절로 그친다 그러나 비교적 중 하차를 쓰고 그 상품은 또한 늘 있지 않다 며칠마다 한번 마시는 것은 또한 해되지 않는다 이는 크게 이치가 있으나 사람들이 아는자 드물다 그래서 상세히 서술한다."
무슨 큰 비방을 내놓는 것처럼 말하지만 좀 심하게 여겨지는 것은 차는 좋아해서 벽癖을 이룬다면 술은 바로 광狂이라하고 차가 오래되어 암암리 음적陰的으로 손한다고 해봐야 술이 양을 촉발시켜 바로 그자리서 표나게 사람을 상하고 망치는 것의 해로움에 비하면 탓할것도 없을텐데 이렇게 차를 거리하는 것은 차보다 술을 좋아하는 자의 괜한 핑게 밖에 되지 않거나 혹 이때 차의 손해에 대해 다소 과장된 인식이 있었거나 이때의 차음료법이 백토나 소금을 타고 잡 잎새를 섞어 다려 탕약처럼 해 마시는게 흔해 장기적으로 마시면 여독이 만만잖은 일이 있었던듯하며 어쨌든 이는 마치 시경의 정풍 출기도운 시의,
"그 성문을 나서니 띠꽃(*도艸밑余)같은 여자들이 있다 비록 띠꽃 같아도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네 흰옷에 붉은 꼭두서니 두건이 꽤 더불어 오락할수있다." 라고 한대로 무슨일로 띠꽃같이 화사히 북스러운 여자들이 떼로 나와 있는지 몰라도 여기서 띠꽃을 말하는 도(艸밑余)는 곧 뒤에 쓰는 차茶자 이기도 하니 이상 차가 가인嘉人 보다 일단 흔히 이해하는 용모적 미인에 비유될 만했던 개연성을 소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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